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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들의 적덕(積德)
상주공파 일동
24년 03월 02일    101

선조들의 적덕(積德)

 

글 연영흠

 

우리 문중(곡산 연씨)의 실질적인 시조는 정후공 연사종 선조이다. 이분은 태조 이성계와 동향(함흥)으로 15세에 이성계의 문하에 들어가서 함께 종군했고, 위화도 회군 때는 회군공신, 조선 개국 때는 개국원종공신, 왕자의 난 때는 태종 이방원의 수하에서 좌명공신이 되신 분이다. 세종 15년에 별세했을 때 세종 임금은 사흘 동안 조회를 파했고, 묘지를 중심으로 십 리 씩 사패지를 주었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때 받은 사패지는 대부분 사라졌지만, 그래도 상당 부분 남아있어서 그것이 현대 곡산연씨 대동종친회의 종재가 되어서 종친회가 유지되고 있다.

정후공 묘소는 경기도의 시골이었는데 지금은 서울시로 편입되면서 국가에 수용되었고, 상당한 금액(1990년대에 40여억 원)을 보상으로 받았다. 곡산연씨 대동종친회에서는 그것을 바탕으로 현재 수백억 원의 종재를 형성하였다. 곡산 연씨는 전국 성씨 순위 75위의 작은 문중이지만, 대동종친회의 운영이 다른 대성 못지않게 활발하게 운영되는 것은 정후공의 음덕이라고 할 수 있다.

정후공이 공신이 되었을 때 국가에서 그려준 영정이 곡산 연씨의 본관인 황해도 곡산에 있었는데, 후손인 연경희 씨가 1930(1920년대라는 말도 있음)에 나의 고향인 강원도 홍천으로 모시고 왔다.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과 서석면에는 곡산연씨 21세 손인 연영노의 후손들이 300여 년 동안 세거하고 있었다. 홍천 문중에서는 홍천군 서석면에 영당을 짓고, 이 영정을 중심으로 30여 년 동안 시제를 지냈다. 19506,25전쟁으로 인해 문중이 어려워지자 1960년대에 당시 홍천 문중 종손인 연소흠 씨가 곡산 연씨의 문중세가 강한 충청도 증평 문중으로 이관했다. 조선 초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이 영정이 현재 곡산연씨 문중 최고의 보물로 보관되어 있다.

문제는 이 영정이 어떤 연유로 강원도 홍천으로 왔느냐에 대해서 아는 이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1930년에 영정을 모시고 온 연경희 씨를 포함해서 당시 영당을 짓고 시제를 모시던 어른들은 물론 그 자제분들도 대부분 작고하셨다. 지금 와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당사자로부터 조금이라도 들은 사람은 생존자 중에는 아주 드문 듯하다.

1960년대 후반에 내가 고등학교를 춘천으로 진학했을 때, 연소흠(홍천 문중 종손. 항렬로는 형님이지만, 연세로는 내게 할아버지 연배 셨음. 전 곡산연씨 대동종친회 전무이사이고, 현재 곡산연씨 상주공파 총무인 연영모의 조부.) 형님이 춘천에 살고 계셨다. 형님은 나를 반기시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

배운 네가 집안 역사를 알아야 한다. 우리 문중이 사실은 곡산 연씨의 종손이다.”

너나없이 어려웠던 시절이라 우리 동기들은 대부분 초등학교에서 멈췄고, 고교에 진학한 경우는 30% 내외였던 시절이다. 우리 성씨의 홍천 문중에서 4년제 대학에 진학한 것도 내가 최초였으니 배운 너라는 말씀을 하신 듯하다. 그때까지 나는 족보나 문중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고,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소흠 형님 댁에 인사를 드리러 갈 때마다 그런 말씀을 들으면서 무언가 알게 된 것이다.

그 무렵에는 정후공의 묘소가 서울의 하계동에 있었는데, 소흠 형님은 묘소에 비석을 새로 세울 때와 시제 때 나를 데리고 가셨다. 정후공의 묘소는 1990년대에 국가에 수용되면서 지금은 충북 증평으로 이장하였는데, 홍천 문중에서 옛 정후공의 묘소에 다녀온 사람은 생존자 중에는 아마도 내가 유일한 듯하다.

소흠 형님으로부터 들은 홍천 문중이 종손이라는 것이 무슨 말인가를 알기 위해 대학 시절에 족보를 펼쳐 놓고 백과사전과 자전을 보면서 해석을 해보았다. 내가 국어교육과에 다니고 있었으므로 한문으로 된 족보의 문구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족보를 보니 21세 종손은 원주에 정착한 연태노라는 분이고, 아우가 홍천에 정착한 연영노이다. 그러나 연태노의 후손은 두 번에 걸쳐 자손이 끊겨서 다른 문중에서 양자를 들여서 대를 이었다. 그 양자 두 분이 사촌이나 육촌 등 가까운 집안이 아니라, 전혀 파가 다른 문중(회양공파)의 후손이었다. 그러므로 혈통으로 보면 연영노 선조의 후손인 홍천 문중이 곡산연씨의 종손이라는 것도 일리는 있었다. (숙종 19년인 1693년에 문중의 학자면서 우암 송시열의 제자인 연최적이 인현왕후 폐비의 부당성을 상소했다가 어전에서 고문 끝에 옥사했음. 기묘사화 등에 연루되어 여러 번 곤욕을 치른 적이 있던 터라, 문중의 종손 태노는 아우인 이노와 삼노와 함께 원주로 낙향했고, 사촌인 영노는 홍천으로 낙향했음. 태노의 형제들 중에서 이노와 삼노는 후손이 끊겼고, 태노와 영노만 후손이 전해짐.)

그렇게 소흠 형님으로부터 문중에 대해서 알게 된 후 고교시절(1960년대 후반) 어느 설날 무렵에 우리 문중 세거지인 내촌면 물걸리에 사시는 연규찬(영정을 모시고 온 연경희 씨의 자제, 그 무렵 팔렬중학교 행정실장) 씨 댁에 세배를 드리러 갔을 때, 영정에 대해서 여쭈어보았다.

작고하신 연경희 할아버지는 홍천 문중과는 아무 관계가 없고, 일제강점기에는 곡산과 홍천이 아주 멀었을 텐데, 영정을 어떻게 홍천으로 모시고 왔는지요?”

연규찬 씨는 이런 내용의 답변을 주었다.

당연하지. 이곳이 종가가 아니냐? 우리 아버지는 종손 댁을 찾아온 것이다. 그때 와룡할아버지(연규식. 1881년생. 1950년대 말에 작고. 한학과 한의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홍천군의 이름난 문예박사였음. 묘각 건립과 영정 보존에 중추적인 역할을 함.)와 연00, 00(다른 분들의 성함은 잊었음.) 같은 분들이 애를 많이 쓰셨지."

지금 와서 생각하면 몹시 아쉬운 것이 대화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때의 나는 그 일에 대해서 크게 관심이 없었고 들었다고 해도 이해를 못 했을 것이며, 연규찬 씨 역시 학생인 내게 깊게 알려줄 필요가 없었으니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그때 좀 더 자세히 듣고, 그 내용을 기록으로 남겼다면 내가 좀 더 많이 알게 되지 않았을까, 라는 점이다.

1970년대까지도 1930년에 영정을 모신 사정에 대해서 알고 계시는 분이 많으셨다. 나의 선친도 어느 정도 아시는 듯했고, 문중사에 대해서 소상히 아시는 분들이 다수 생존해 계셨는데, 그분들은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고 작고하셨으며, 나를 비롯한 후손들도 깊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는 연경희 씨가 어떻게 해서 홍천 문중으로 영정을 가지고 왔는지, 곡산과 홍천은 상당히 먼 거리인데, 그 시절에 홍천 문중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등에 대해서 아는 이가 한 분도 없으니 안타깝다.

지금 시점에서는 홍천문중의 종손이셨던 연소흠 형님이나, 영정을 갖고 오신 연경희 씨의 자제인 규찬 씨에게 이런 문중 일로 대화를 나눈 사람이 어쩌면 내가 유일한 생존자인 듯하다. 문중의 다른 일가들은 어른들께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고 한다.

이 글의 제목을 선조들의 적덕(積德)이라고 한 이유는 현재 내가 곡산연씨 대동종친회 이사로 20여 년 동안 종사에 참여하고 있으며, 23일 대동종친회 정기 총회에서 상주공 문중(홍천 문중)의 일을 정리하여 발표함으로써 현안을 해결하는 결실을 거두게 된 배경에는, 연소흠 형님, 연규찬 아저씨가 학창 시절의 내게 문중사를 들려준 것이 큰 힘이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은 홍천 문중에서 내가 아는 만큼 아는 분도 거의 없는 듯하지만, 홍천 문중 종손인 연영모는 조부인 소흠 씨로부터 들은 바가 있을 테니 어느 정도 짐작하리라고 본다. 아무튼 선조들의 적덕이 나를 통해서 지금에 이어진 것이 아닌가 싶고, 내가 아는 사실이라도 사라지지 않게 기록으로 남기려는 것이 이 글을 쓴 목적이다.

오늘의 결실을 이룬 선조들의 적덕으로 한 분 더 꼽으라면 2019년에 작고하신 연재흠 삼종형님을 들고 싶다. 이 분은 1983년에 강원문중을 강원화수회라는 현대적인 조직으로 정비했고, 2006년에는 곡산연씨 강원지회를 창립한 후 대동종친회의 인준을 받았다. 강원지회가 있었기에 223일의 상주공 문중의 현안이 결실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세 분 외에도 상주공파의 많은 선조들의 넋이 적덕이 되어서 현안을 해결하는 결실로 이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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